이 절 인심 고약타!


 사람을 겉만 보고 무시하는 사람치고 군자가 없다. 
무릇 군자는 그 사람의 내면을 읽는 눈을 키우지, 
겉치레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김삿갓이 금강산을 지나던 중 어느 절을 지나치게 되었다.
매우 정갈한 절이라 그곳에서 잠시 머물며 쉬었다 갈 요량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스님들이 아무도 안 보이는군.”
그러면서 김삿갓은 절의 한가운데 있는 법당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 저기 스님이 계시는군.”
조금 떨어진 법당 안에 선비 한 사람과 스님이 마주 앉아 
무슨 이양기인가를 열심히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김삿갓이 법당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인데 잠시 쉬었다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선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지금 스님과 긴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고 저리가시오.”
노골적으로 내쫓으려는 말에 김삿갓의 비위가 확 상했다.
“무슨 은밀한 얘기를 나누시나 본데, 참 딱도 하십니다.”
“뭐요? 뭐가 딱하다는 말이오?”

은근히 비위를 틀어놓는 김삿갓의 말에 선비가 발끈했다.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려면 저기 뒤꼍 승방에 가서 나눌 일이지, 
앉아서 구만 리를 내다보시는 부처님 앞에서 밀담을 나누다니 두렵지도 않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선비와 중은 허름한 과객을 내쫓으려다 어리석은 속내를 들켜 버린 것 같아 
못내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글 솜씨로 겨루기를 해서 김삿갓을 내쫓을 심산으로 이렇게 말했다.
“보아하니 글줄이나 읽은 사람 같은데 내가 불러주는 운에 맞춰 시를 지을 수 있겠소? 
만약 시를 지어내면 식사를 대접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내게 절을 하고 
이 절을 떠나도록 하시오.”

김삿갓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짓기라면 그의 특기라 할 수 있는데, 선비는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격이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러자 선비가 지체 없이 운을 떼었다.
“타”
“타? 그 글자가 한문이오? 한글이오?”
선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글로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아 한글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선비의 입에서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삿갓의 시가 튀어나왔다.

“사면 기둥 붉게 타!”
선비는 뜻밖으로 대답이 선뜻 나오자 재빨리 다음 운을 불렀다.
“한 번 더, 타!”
“석양 행객 시장타!”
“또 타!”
“이 절 인심 고약타!”
“……”
“아니, 왜 운을 부르다 마는 거요?”
너무 빠르게 답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선비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더구나 김삿갓이 갈수록 듣기 거북한 대답만 골라하자 
다시 운자를 부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또 망신을 당할 것 같아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비가 다시 한번 타자로 운을 부르면 김삿갓은 이렇게 대답할 참이었다.
‘지옥가기 꼭 좋타!’



-김삿갓의 지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