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먹는 프랑스인
인종차별주의자인 브리지도 바르도는 2001년 12월 3일 MBC
라디오에서 손석희 사회자와전화 대담 중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은 야만인"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손석희 사회자가“프랑스인도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는 데 알고 있느냐?”고 하자“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 그런 거짓말을 하는 한국인과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다”고 하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서
한국인들의 분노를 샀다. 그래서 충청대학 안용근 교수는 중앙일보(2001년 12월 6일)에 프랑스인도 보불전쟁 때 개고기를
먹었고,
1870년대에 파리에 개고기 정육점이 있었다는 프랑스 문헌과,1910년대 파리의 개고기 정육점 개점을 알리는 사진(프랑스책에서
인용)을 제시하여
프랑스인이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을 거짓말로 밝혔다. 다음은 프랑스인이 개고기를 먹은
자료이다.
★ 말레와 드니(Malher et Denis):‘개의 식육 활용(1989)’이라는 논문에서
프랑스는 기근이나 전쟁 때 개고기를 먹었고, 프랑스 영토 타히티에서는 지금도 개고기를 먹기 때문에 토종개인누렁이는
7월14일 국경일에 절반이
꼬치구이로 사라진다고 하였다(1, 2).
★ 므니엘(Meniel, 1987): 프랑스인 조상 골로와(Gaulois)족에 대한 연구에서,
그들 조상의 무덤에서 잡아 먹은 개뼈가 나왔다고 한다(1, 2).
★ 페레즈와 그르누이(Perez et Grenouilloux): 프랑스의 중세 앙돈스 유적에서
잡아먹은 개다리뼈 유적이 나왔다고 한다(1, 2).
★ 로미(Romi): 1870년 파리가 프로이센군에 포위되었을 때 파리 사람들은 개고기, 고양이고기, 쥐고기, 말고기 등을 먹으며
연명하였고, 개고기와 고양이고기 파는 정육점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개고기를 먹던 기자도 여럿 있어서 크로니크 드
세쥬(Clonique de Sejour)에 개고기를 칭찬하는 기사가 다음과 같이 실렸다.
'개고기는 껍질을 잘 벗겨 잘 조미하여 보통 소스를 치면 맛있다. 색도 핑크빛으로 아름답고 연하고 맛있다.'
그러나 반대 기사도 있다. 1871년 2월 11일의 르몽드 이류스트레(Le Monde
Illustre)지의 '파리통신' 난에는 '마트로트 소스(Matelote source, 적포도 베이스)에 담근 쥐고기는 노루고기나 토끼고기 맛이
나는 데 반해 개고기는 너무 맛이 없다. 호기심으로 개고기를 먹어보았으나 질기고 딱딱하고 썩은 냄새가 난다. 개는
음식찌꺼기나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먹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실렸다(3).
★ 샤를르 로랑(Ainsi Charles Laurent, 1970):‘개에 대한 모든 것(개
전서)’이라는 책에서 1870년 보불전쟁 때 프랑스에는 개정육점, 고양이 정육점, 큰쥐 정육점이 있었고,
쌩또노레(Saint-Honore)가
개시장에서는 개고기 1kg에 2프랑 50센트에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파리 시내에서 개를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1, 2).
★ 귀스타보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62): 살랑보(Salammbo)라는
책에 ‘식탁이 고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 배와 올리브 찌꺼기로 살을 찌게 한 분홍빛 강아지로 만든 카르타고 요리를 잊지
않았다.’고
썼다(4).
★ 몽스레(Montseret): 1870년 12월 파리가 포위되었을 때, 몽스레도 굶주려서 쥐를
잡아 먹었다. 친구인 극작가 테오드르 바리에르(Barriere)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귀여워하던 검은색 푸들 개고기를 잘
요리해 놓았으므로
먹으러 오라고 초대하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잡은 것이었다. 몽스레는 생각지도 않았던 개고기 로스구이를 칭찬하며 먹고 나서
개뼈를 지그시 보면서
'불쌍한 것, 네가 살아 여기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였다(3).
★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빅토르 위고는 '공포의 해, 1872년'라는 책에서
1871년 파리가 포위되었을 때, '말도 쥐도, 곰도, 노새도 잡아먹었다. 파리가 물샐틈없이 포위되어 우리 위는 노아의 방주와
같았다. 어떤
고기든 가리지 않고, 고양이도, 개도, 악마도, 다른 나라의 난장이도 모두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위(배) 속에서 쥐가
코끼리에게
"안녕하십니까" 인사한다.’고 썼다(3).
★ 동물원 동물: 1870년 보불전쟁 때 파리가 프로이센군에 포위되자 시민들은 배가 고파서 개를
비롯한 애완용 동물은 물론 동물원의 동물도 잡아먹었다. 그래서 개와 고양이를 함께 끓여서 6,000마리 이상 잡아 먹었고,
브로뉴숲에 있는
동물원의 동물도 모두 잡아먹었다고 한다(3, 5).
★ 개고기 요리책: 1870년에 프랑스에서는 개고기 조리법 수십가지가 불어 책으로
출판되었다(6).
★ 르몽드
이류스트라온(Le monde Illustration)지: 1871년 4월, 고양이고기와 개고기 파는 가게에 사람들이 줄지어선 삽화를 그리고
있다(3,6).
사진: 1871년도 르몽드 이류스트라시온지에 실린 비에쥬르의 뎃상.
1870년 10월, 몽마르뜨(Mont Martre) 근처의 로슈슈아르 (Rochechuart) 가의 정육점. 쥐고기, 개고기, 고양이고기 팻말이
보인다(3,6)
★ 와타리로쿠노스케: 1870년 당시 당시 프랑스에 유학하고 있던 일본 청년
와타리로쿠노스케(渡六之助)는 일기에 '시청에는 지난 9월 17일 이후 파리 주민이 잡아먹은 고양이의 가죽이 약 27,553장이라고
써 있고,
파리에서 기르는 고양이는 약 25만마리나 된다고 한다. 이 정도로 파리에서 개와 고양이를 잡고, 개와 고양이를 잡아 파는 파는
가게도 생기고,
군인 주둔지에서는 개만 잡아서 먹는다.'고 기록하였다(7).
★ 안토니오 다블뤼(Antonio Daveluy, 1817∼1866): 프랑스인이며, 조선교구
5대 교구장으로 보신탕을 즐겼다(2).
★ 끌로드 샤를르 달레(Claude Charles Dallet): 프랑스 포교자로,
조선교회사(1874)에서 “조선에는 양고기는 없고, 그 대신 개고기가 있는데 선교사들은 모두 그 맛이 나쁘지 않다”고
하였다(2).
★ 개가죽: 19세기 프랑스에서는 개가죽으로 백 파이프(bag pipe)를 만들었다.
푸아트(Poitou) 지역에서는 1950년대까지 개가죽을 안에 댄 장화를 만들었다(4).
★ 홍세화: 보불전쟁 후 사회주의자들의 반란(Paris commun) 때도 파리 사람들은
개고기는 물론 쥐고기도 먹었다고 한다(8).
★ 개고기 정육점: 1910년 경에 파리에 개고기 정육점이 있었다.
사진: 1910년경 파리의 개고기 정육점이 생긴 것을 알리는 플랙카드(4)
★ 마빈 해리스: 폴리네시아의 타히티(Tahiti)는 프랑스령, 즉, 프랑스로, 오래 전부터
개를 길러 잡아먹었다. 폴리네시아에는 초식동물 가축이 없어서 개가 가축 역할을 하였고, 사냥감이 없어서 사냥에 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살아서보다 죽어서 고기를 제공하는데 가치가 있었다. 개를 살찌게 하기 위해서 꼼짝 못하게 등을 누르고, 생선과 야채반죽한
것을 먹이고, 야채를
먹이면 고기냄새가 좋다고 하였다. 개는 주둥이를 묶고 손으로 목을 졸라 죽이거나 막대기로 눌러 죽였다. 내장을 째서
씻고털을 불에 그을러
없애고, 코코넛 껍질에 담가둔 피를 바르고 흙으로 만든 그릇에 넣어 구웠다. 개고기는 신과 나누어 먹어야 할 정도로 좋은
음식이었고, 사제들이
공적인 행사에 개를 많이 잡았고, 사제들은 제물로 바친 개고기를 먹거나 집으러 가져가서 가족과 함께 먹었다. 개고기를 항상
먹을 수 있는 것은
사제와 귀족들 뿐이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되었지만 희생제가 끝나면 평민들은 남은 것을 몰래 갖다가
가족에게 주었다. 마오리족
남자는 아내가 임신 중에 개고기를 먹고 싶어하면 마련해 주어야 했다(9).
★ 현재: 파리 북부 지방에 개를 잡아먹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파리에서도 개를 더러 잡아먹는다고 한다. 개고기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자랑하고, 먹는 사람은 좋은 기회라 하여 먹는다고 한다. 대개 삶아먹는데 sate라 하여 닭구이 같이 한
요리도 있다고 한다(10). 현재, 한국에 와 있는 프랑스인 중에는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 타히티 도살장: 1997년 타히티에서는 개를 잡은 도살장
사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프랑스에 자기 개를 잡아 먹는 것을 금지하는 법은 없다. 개고기를 팔기 위해 잡는 것만 금지한다.
타히티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전통 때문이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타히티에 살았던 브리지도 바르도가 타히티 어린이들에게 동물에게
편지쓰기 운동을 하자,
타히티 어린이들은 편지에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먹는 것을 보았다고 썼다(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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